피터 드러커 /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펴냄





한 인간을 평가하는 잣대로 소위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관점을 몹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남의 눈에 어떻게 비춰졌는가 하는 점은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공정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외부에 비친 한 인간의 모습이란 객관성을 담보하는 대신에, 내면의 주관성이 설명될 여지를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내면의 진실은 당사자의 고백이 아니고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한 면에서 자서전 읽기야말로 평전 읽기보다 한 인간의 진실에 가닿는 적확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나는 많은 자서전을 읽질 못했지만, 자서전 읽기에 비중을 두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세기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 자서전을 읽었다. 지난해 12월 버락 오바마 자서전 읽기에 이어 근래 두번째 자서전 읽기에 도전했다. 분량이 700여 페이지에 달했다. 버락 오바마의 자서전은 한동안 깊이 몰입돼 읽었다면, 피터 드러커 자서전은 전전 긍긍하며 읽었다. 그 이유가 아마도 문체의 난해함에 있었는지 그 철학적 깊이에 있었는지 정확하진 않다. 내게 드러커의 자서전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자서전의 서술적 독특함과 사유의 차별적인 깊이는 그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에 다름 아니다.
이 자서전의 독특함은 어디서 오는가? 대개 자서전이라 하면 자신의 살아온 얘기를 가장 주관적인 입장에서 연대순으로 서술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드러커는 자신의 얘기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다룬다. 자신의 삶에서 그와 깊이 관계된 사람들, 혹은 스치고 지나갔더라도 관심있었던 사람들을 자신의 시선과 생각으로 잡아두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이 자서전에서 보여준다. 그들은 드러커의 인생을 결정짓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의 할머니, 학창시절의 선생님, 그리고 회사의 상사, 동료 학자, 정치가 등이 그들이다. 얼핏보기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드러커는 애정어린 시선과 관찰을 통해 교훈을 끄집어낸다.
이같은 이 책의 특징은 자서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성을 훼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주관성과 내밀함이다. 관찰자의 시선이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다. 경영학의 대가이자 20세기의 지성, 모든 CEO들의 멘토이자, 르네상스적 지식으로 무장한 경영학자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드러커의 내적 삶과 사연에 도달하기를 기대했던 독자들은 이 자서전의 서술방식인 객관적 거리두기에 약간 실망하지도 모른다. 드러커는 자서전의 서문에서 자신이 관찰자(구경꾼)로 평생을 살아왔음을 고백하면서 개별적 존재인 인간의 가치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주지시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다양성에 매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름대로 흥미로운 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인습에 순종적인지, 또는 얼마나 보수적인지, 아니면 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지 상관없이, 일단 그가 자신의 일이나 지식, 흥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력적인 존재로 돌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결국 개별적인 존재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p.11
드러커의 할머니는 작고 왜소하며, 항상 자신을 "멍청하고 늙은 여편네"라고 부르며 겸손했지만, 그녀는 젊었을적 미모의 피아니스트로 클라라 슈만의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직업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며, 평범한 가정의 주부로 살았으나 그녀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 준 유쾌한 사람으로 드러커의 기억속에 남아 있다. 한번은 이웃 아파트 아파트 꼭대기층에 사는 창녀가 감기가 걸린 것을 알고, 감기약을 건내주기 위해 아픈 다리를 무릅쓰고,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온 할머니에게 드러커의 조카가 말한다. "하지만, 할머니, 숙녀가 그런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맞지 않아요" 이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 너희는 언제나 그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옮기는 끔찍한 성병만 걱정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나 역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 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 감기를 옮기는 일은 예방할 수 있다고."
한번은 할머니가 식당에 들어갔다가 불친절한 여종업원을 밖으로 쫓아낸 적이 있었다. 손님을 맞는 태도가 불친절한 여종업원이 할머니에게 다가오자 할머니는 우산 손잡이를 그녀의 팔에 걸고 약간은 상냥하게 말한다. "아가씨는 교양있고 지적인 여자처럼 보이는군. 당신은 아마 직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모르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 거야, 그렇지? 그러니 밖으로 나가." 할머니는 우산으로 그녀를 문 쪽으로 세게 밀었다가 이렇게 덧붙인다. " 다시 들어와서 손님에게 적절한 예의를 보여봐." 이에 손자들이 할머니에게 놀라고 당황스러워 묻는다. " 하지만, 할머니, 우리는 다시 여기에 오지 않을 거잖아요. " 그러나 할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저 아가씨는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잖니."
할머니의 일화 가운데 손녀들에게 해준 약간 불가사의한 충고도 이야깃거리다. " 얘들아, 밖으로 나갈 때는 항상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거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란다." 이에 기분이 상한 손녀들이 자신은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라고 답하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 네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는 그때 가서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지."
엘자와 소피는 어린 시절, 드러커의 선생님으로 그를 훗날 교육자의 길로 인도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이다. 이들은 자매였지만, 자매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격이 판이했다. 미스 엘자가 권위를 중시했으나 담임으로 취임한 날 아이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는 완벽주의와 의외의 따뜻함을 소유한 스승이라면, 미스 소피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사랑이 넘쳤던 선생이다. 드러커는 미스 소피를 깨달음과 학습을 제공하는데 능숙한데 비해, 미스 엘자가 기술과 비전을 제시했던 스승이었다고 기억한다. 드러커는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수많은 스승들을 만나왔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자신을 가르쳤던 이 자매 선생님보다 더 큰 교육자를 만나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그들이 초등교육을 담당하긴 했지만, 선생님이 가져야할 교육적 철학이 확고했고 더불어 아이 각자에 대한 맞춤식 교육과 인간적인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훗날 엘자와 소피는 드러커가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끝없는 영감을 불어넣어준 인물로 각인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스 엘자가 아직 살아 있으며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드러커는 몇가지 물품을 그녀에게 보내며, 모든 글씨를 타자기로 쳤으나, 사인만은 육필로 기입했다. 어린시절, 미스 엘자는 드러커의 악필을 교정해보고자 노력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글쓰기엔 소질이 있음을 알고 그를 격려하고, 끝임없는 연습을 시키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고 얼마후, 미스 엘자는 어렸을적 제자가 열 살 때 그렇게 감탄했던 아름다운 글쓰체로 답장을 보낸다. "너는 그때와 다름없는 피터 드러커임에 틀림없구나. 교편을 잡는 동안 겪었던 몇 안 되는 실패작 말이야. 너는 내게 글씨를 알아보게 쓸 수 있는 기술을 익혔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지."
"진정한 선생과 진정한 교육자에게는 게으르다거나 열등하다거나 멍청한 학생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선생이 잘했거나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p. 201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던 어린시절, 여덟인가 아홉살 때 만난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기억은 지금껏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프로이트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프로이트가 현대정신의학이나 현대 문명에 미친 영향의 지대함을 인정하지만, 그가 당시에 일종의 과대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고, 그같은 원인을 드러커는 타인의 언행이 아닌 프로이트 자신의 이론들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열살도 되지 않은 그의 눈에 비친 프로이트를 분석한것이라기 보다는 먼훗날, 프로이트를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는 어린 시절의 프로이트에 대한 그의 회고와 비판에 가깝다. 빈 의학계에서 초창기 프로이트를 무시하고, 경시했다는 그의 피해의식에 대해, 드러커는 그 당시 그만큼 심도 있게 논의되고 연구되고 논쟁이 대상이 되었던 존재는 없었을 뿐더러, 그를 단지 학계에서 `거부'했던 이유를 드러커는 그가 당시 의사로서의 윤리를 상당 부분 위반했고 그의 연구가 의학연구나 치료법이 아니라, 시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20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프로이트의 정신의학적 연구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드러커의 개인적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장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연구하면서 유아성욕 등에 대해 언급하며 당대 많은 비판을 받은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대한 드러커의 해석은 오늘날의 그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싸늘하긴 하지만, 이 장의 끝에서 드러커는 그의 학문이 "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좀더 매혹적인 이론인 동시에 인간적 감동을 주는 이론"이었다고 마무리 짓는다.
이와 더불어 이 자서전에서 드러커는 나치즘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헨슈와 셰퍼"라는 인물을 통해 악의 본질을 묻고, 19세기의 탁월한 개인 금융업자였던 프리트베르크의 구시대적 삶을 추적하고, 타임과 포춘, 라이프 지를 창간한 헨리 루스 라는 통근 인간의 삶을 다룬다. 절대적 권위를 앞세워 GM를 이끈 앨프레드 슬론과의 만남은 그가 최초로 대기업의 경영 컨설턴트로서 경험을 쌓는 기회로 작동한다. "미디어는 메세지다"라는 말로 유명한 마샬 맥루안과의 개인적 친분을 회고하기도 하고, 그를 테크놀러지의 위대한 예언자로 기린다. 책의 후반부 대공황 시기의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는 오늘 지구적 금융 위기 시대에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로 의미롭다.
드러커는 대공황 시절 미국인의 대응 방식이 "상호 의존과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려는 적극적 자세"로 넘쳐났다고 회고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역동성과 긍정성을 함의한다. 이는 꼭 자연재해를 극복할때와 같이 미국이란 공동체가 서로의 간격을 좁히고 각자가 상대방의 구원자 노릇을 했다,고 드러커는 회고하고 있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마치 자연재해를 회상하듯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장황한 개인적 사연이 등장하는데 보통 "내가 어떤 식으로 극복했냐 하면" 또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하면"으로 시작하지만, 긴 이야기의 끝은 결국 이랬다. "당신도 봤지? 내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어." <피터 드러커 자서전>, p.622
피터 드러커는 시대를 한발 앞서가는 전망과 미래적인 안목을 경영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제공해왔던 학자였다. 평생 학습하는 습관을 가장 중요시했으며, 90세가 넘은 나이때까지 은퇴를 몰랐던 무서운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자서전을 다 읽고보니 그같은 그의 기질과 특성의 일부분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는 사람을 평가할때 세속적인 유명세나 사회적 지위를 보고 어떠한 선입관을 품지 않았다. 자서전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모든 인간에겐 그들 나름대로의 다양성이 있으며, 그같은 다양성에 단점과 장점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행로안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에 섞여들지 않고, 그들 곁에서 한발 물러서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자신의 인생과 학문의 교훈으로 삼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천성적인 구경꾼(관찰자)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자신밖의 세계와 인간들에 대한 방관자적 입장을 설명한 것이 아니다. 삶과 사업의 성패, 세상이 돌아가는 하나의 원리원칙이란 언제나 차분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20세기 비상하던 산업사회의 기업과 근로자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응용되었고, 언제나 그의 미래 예측은 높은 신뢰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1930년대 드러커의 최초의 저서 <경제인의 종말>에서 히틀러 체제속의 독일의 전횡(專橫)과 세계 대전의 가능성을 예상한 일로 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지식인의 높은 지지를 얻은 바 있고, 1960년대 이후 미래의 지식 사회의 도래를 예측하고 경영인과 근로자 모두에게 지식의 중요성을 설파한 일은 그의 시대를 관통하는 안목을 보여주는 일화라 말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경영학자, 모든 기업의 경영자들이 멘토로 삼고 싶어했던 컨설턴트인 피터 드러커는 지도자(Leader)의 조건을 어떻게 정의 내렸을까? 어떤 이가 진정한 지도자인가? 그는 다음과 같이 지도자를 정의내리고, 지도자의 특성을 간파한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자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카리스마는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그는)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피터 드러커 자서전>, p.339
경제가 어렵고,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빠져들고 있는 지금 이 지점, 대한민국엔 피터 드러커가 설명한 지도자(Leader)가 있는가 ? 이 질문에 나는 몹시 회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외교적으로나 남북 관계에서나 분배적인 평등, 사회 정의적 관점에서 수렁에 빠진 이유는 몹시도 단순하다. 즉, 지도자가 사심(私心)없고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란 시간의 세례를 받는다고해서 그 진가가 훼손되진 않는다. 위대한 예술작품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가치를 배가시키는 것처럼, 한 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는 그가 죽더라도 영원히 국민과 세계 시민의 마음속에 살아남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책을 다 읽어갈즈음에 접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내겐 크나큰 아픔이며, 충격이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가 얘기했던 것처럼, 그 기준에 맞는 위대한 지도자를 우리는 한 때 대통령으로 가진 국민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은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은 자신의 삶을 직접적으로 서술한 책이 아니지만,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피터 드러커의 깊이 있는 사유와 예리한 분석, 시대를 통찰하는 시선앞에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당당한 자신으로 살아가야할 근거를 획득하게 된다.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2009.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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