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제 곁에 앉아 손을 잡고는 늘 흐느껴 울고는 하셨습니다. “나는 아네… 나는 알아… 이삭 목사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나는 너무 잘 아네…” 범브란트 목사님은 14년간이나 루마니아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다 1967년 석방되어 미국에 오셔서 ‘순교자의 소리’라는 선교회를 조직하고 오랫동안 강연과 집필을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목사님 댁을 방문하면 늘 내 곁에 앉아서 중국과 북한에서 사역 중에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받아쓰시고는 했습니다. 그 분은 모든 부분에서 제게 많은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당한 고문과 제 아픔은 비교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늘 제 이야기 듣는 것을 즐겨하셨습니다. 제가 사역 중에 잡혀 고문을 당한 후에도 여러 차례 그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 때마다 몇 시간씩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중국과 북한 그리고 이스라엘의 성도들이 겪는 환난의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모슬렘권과 이스라엘의 사역을 눈여겨 보면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들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죽어 가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핍박은 시작됩니다. 중국에서나 이스라엘에서는 그래도 십자가를 목에 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정말 생명을 거는 일입니다. 지하성도는 지하에서 깔려 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믿음은 죽음과 바로 맞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축복의 자리라고 설명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범브란트 목사님과 사모님을 기억합니다. 오랫동안 중국 감옥에 갇혀서 믿음을 지켰던 왕명도 목사와 원상심 목사 그리고 모세 목사님을 기억합니다. 예수를 믿어 한평생 감시와 초라한 거처에서 가난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면서도 오히려 기뻐하고 또 기뻐하며 예수를 증거했던 메이블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이분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주를 위해 죽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워 무릎을 꿇고 아룁니다. “하나님 마지막으로 감옥에 가서 저들처럼 긴긴 시간 고문을 당했으면 제 마음이 좀 좋을 것 같아요.”라며 눈물 짓습니다. 지금이라도 주님을 더 알 수 있다면 다시 환난을 겪는 자리에 서는 것을 자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을 좀 더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한 일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알기 원하노라!” 저는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고 말하고 싶은데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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